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는 1월 첫째 주를 홍콩에서 보내는 게 매년 정해진 일정 중 하나였다. 그만큼 홍콩 완구·게임박람회는 십수 년 전 한국 짐보리에서 완구수입 담당으로 일할 때부터 코로나19 창궐 이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녀온 친숙한 전시회다.
홍콩 완구·게임박람회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완구 관련 전시회다. 1월 홍콩에서 전 세계 완구 관련 회사와 관계자들이 모여 그 해의 사업 전망을 점치고 앞으로 유행할 장난감을 선보인다. 2월에 열리는 독일 뉴렌버그 완구 박람회(Spielwarenmesse)와 업계에서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전시지만 한 해를 여는 1월에 열리는 만큼 의미가 더 깊다고 할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가 초창기에는 ICT 분야에 국한됐다가 지금은 전 분야의 상품을 소개하듯 홍콩 완구·게임박람회에도 완구를 근간으로 하는 유관 상품이 모두 모인다.
홍콩컨벤션센터를 전부 완구와 유관 상품으로 채우고도 부족해 게임, 문구, 유아용품, 교구, 라이선스 쇼 등 다양한 이름의 전시가 이 행사에서 갈라져 나왔고 이들 모두 같은 기간에 열려 참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올해 전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열리는 오프라인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소비재 시장이 다시 회복하고 있기에 온·오프라인 개최를 결정한 듯하다.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라이선스 전시는 4월로 연기됐다.
2020년 1월 라이선스 전시회 이후 다시 찾은 홍콩은 3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해 5월 홍콩컨벤션센터와 바로 연결된 지하철역이 생겼을 뿐이다.
홍콩 정부는 전시 개최를 며칠 앞두고 입국할 때, 체류할 때 이틀에 한 번꼴로 해야 하는 PCR 검사를 비롯해 외국인 대상의 방역 조치를 모두 해제해 입국은 수월했다. 다만 우리 정부는 중국의 여행 자유화 조치에 따라 홍콩에서 입국할 때 PCR 검사를 의무화하고 현지에서 48시간 전에 PCR 검사를 받도록 했다.
라이선스 전시에 부스 참가사 자격으로 전시장을 찾았던 필자는 올해에는 방문객의 입장에서 3년 전과 바뀐 부분을 알려 내년 전시에 참가하려는 기업들에게 도움을 주고자한다. 우선 올해 전시회에 참가한 기업과 방문객이 줄었다.
코로나19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어 참가 규모가 이전 행사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행사장 곳곳에 빈 부스가 많아 복도까지 찼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참관객 감소도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보통 전시 첫날 등록대는 북새통을 이뤘지만 올해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로 눈에 띈 건 3년 전 시범 적용했던 전자배지(e-Badge)를 전면 시행한 점이다. 주최 측은 휴대전화의 NFC 기능을 활용해 모든 행사장 입구에서 출입자를 체크했다. 오프라인 배지도 발급했지만 전자배지 사용을 독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등록대가 더 한산했으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국가관(파빌리온)이 사라진 것도 3년 전 행사와 달랐다. 올해는 한국, 중국, 대만, 이탈리아, 스페인, 이스라엘 등 각국 완구계의 생산자조합을 중심으로 한 국가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완구공업협동조합을 통해 한국관을 조성했지만 이번에는 마련하지 않았으며 우리 기업들은 개별로 참가했다. 베이비페어 현장에는 코트라(KOTRA)가 운영하는 한국관이 있었으나 참가 기업은 10곳에 그쳐 이전보다 규모가 줄었다.
해외여행을 자유화한 중국에서도 준비과정이 필요했기에 많은 기업이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부스를 차지한 대부분의 기업은 홍콩의 완구 유통사들이었다. 전체 전시 기업의 70%는 홍콩 유통사, 25%는 중국 회사, 나머지 5%는 기타 국가에서 참가한 것으로 느껴졌다.
이와 함께 전시 디렉토리북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이전과 달라진 점이다.
이곳에 오면 꼭 챙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두툼한 행사 디렉토리북이었다. 모든 참가사의 연락처가 있고 대표적인 국제전시에 나왔다는 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다는 의미여서 상품 제조사를 찾을 때 많은 도움을 주는 자료였다. 사실 디렉토리북을 받으러 홍콩에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최 측은 클릭 투 매치(Click2Match)란 이름의 온라인 비즈매칭 시스템 이용을 유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사용자가 적고 실용성도 낮아 보이지만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온라인 비즈매칭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는 행사의 전체적인 규모와 구성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3년 전에는 다양한 국가의 새로운 상품들을 전시장 코너마다 유리로 만들어진 전시대에 진열하고 최소 주문 수량(MOQ) 이하의 소량 샘플을 쉽게 수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올해는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
현장의 전시 스태프도 매년 해보던 행사가 아니어서 그런지 대응이 미숙했고 참가자들의 질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3년간 전시를 진행하지 않아 노하우가 있는 스태프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행사 준비에 고생이 많았다” 고 전했다.
참여사들의 부스도 눈길을 끌기에 부족했다. 이전에는 큰 공룡 모형, 실물 크기의 자동차 모형 등 대규모 소품은 물론 작은 기업들도 많은 샘플과 새로운 상품을 갖고 나와 바이어들이 줄 서서 만나고자 했지만 이번에는 바이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상품이 많지 않았다.
바이어 라운지에서 만난 이스라엘의 한 바이어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3년 이상이 걸릴 것 같다” 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전시는 해마다 유행하는 테마가 있었다. 어느 해에는 휴대전화와 연동해 사용하는 스마트토이가 전시장을 가득 채웠는가 하면 어느 해에는 분홍색 공주 관련 소녀물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특정 테마가 주도한다기보다 과거 잘나가던 베스트셀링 상품 위주로 구성됐다. 다만 디즈니,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헬로키티 등 대형 프렌차이즈 상품들이 이전보다 잘 보이지 않았다.
이전 행사에 비해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필자는 오랜만에 즐겁게 상품들을 만나면서 완구시장을 점쳐볼 수 있어서 뜻깊었다. 아직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아 완구산업의 불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린이가 있는 한 완구산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는 좀 더 짜임새 있고 다양한 신상품이 등장해 전 세계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시장을 나와 홍콩에 올 때마다 들르는 하버시티 지하의 토이저러스 침사추이점을 찾았다.
전시가 올해의 시장을 보여준다면 토이저러스는 홍콩 완구 시장의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3년 만에 찾은 토이저러스의 상품 전시 방식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매장 중앙에 위치한 수 많은 상품 장식장이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받았지만 전시 상품이 그만큼 줄었다고도 볼 수 있어 매출이 감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의 한 매니저에게 홍콩의 완구시장 상황에 관해 물었더니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본사의 매입량이 코로나19사태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 는 답이 돌아왔다.
특히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디즈니,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등 메이저 프랜차이즈 브랜드 상품들이 많이 줄었고 그 자리를 모노폴리 같은 보드게임류가 차지한 것은 코로나19 시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전시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점이었다.
또 한때 뽀로로 상품이 있던 곳에 핑크퐁 상품이 들어섰고 CJ ENM 라이선스 상품을 많이 출시했던 홍콩의 완구사실버릿(Silverlit)의 상품 코너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신상품과 상품 수가 줄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 캐릭터들이 새로운 브랜드로 한 코너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메타버스를 또 하나의 현실이라는 개념으로 보지만 해외에서는 다양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게임 플랫폼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상품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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