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위해 읽었던 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요 _ 애니메이션 속 그 목소리 _ 성우 오주희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1-07 1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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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그녀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에 콕콕 박힌다. 발음과 호흡이 월등해 대사 전달력이 매우 강하다. 기업 홍보 , 내비게이션 , 극장 또는 경기장 내 안내방송 , 전자제품 , 자동응답시스템(ARS) 등 내레이션이 필요한 곳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갓 태어난 딸에게 많은 책을 읽어준 그때의 노력이 지금의 성우 오주희를 완성했다.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KBS 공채 40기 출신이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좋아하는 팬들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해도 될지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나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 2022년 <아이러브캐릭터> 첫 호의 인터뷰 코너를 장식하게 돼 영광이다.

 


성우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가 있나?
어릴 때부터 성우가 꿈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TV를 자주 봤는데 유독 외화를 좋아했다. 미국 드라마 V , 제시카의 추리극장 , 엑스파일 , 전격 Z작전 등을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와 목소리를 따라 하곤 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성우에 대한 꿈은 여전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곧바로 취직해야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성우를 향한 갈증이 커지면서 스물다섯 살 때 용기를 내 KBS 시험에 도전했는데 덜컥 1차에 붙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지만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금세 벽에 부딪혀 포기해야 했다.
그러던 중 췌장암 선고를 받고 석 달 만에 돌아가신 엄마의 유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단 하루를 살아도 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 는 말씀이었다. 성악을 전공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엄마의 바람 같은 것이었다. 이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다가 30대가 돼 성우 시험에 다시 도전했다. 수차례 낙방의 쓴맛을 보다가 6수 만에 마침내 2015년 KBS에 합격했다. 시험과 관련해선 며칠 밤을 새더라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대표작들을 소개해달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고민했다. 독자들이 알 만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캐릭터들을 말해야 하는데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배역이라도 내 목소리로 연기한 모든 캐릭터가 대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최근 출연작에서 꼽자면 KBS에서 방영된 몬스터탑에서 귀여운 악당 다웅이를 맡았다. 이 캐릭터 덕분에 재능방송 유튜브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고고버스에서는 세라 선생님 역을 맡았는데 이후 초등학교 교재 내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 기회도 얻었다. 2022년 방영 예정인 코드네임X가 나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코드네임X에서 푸들 비서 역을 맡았는데 예상보다 비중 있는 역할이어서 기대가 크다. 특히 이 작품은 내가 직접 더빙 영상에 연기 , 음악 등의 효과를 디자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공을 들여 만들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나?
선생님 , 비서 등 주로 설명하는 역할을 맡은 것 같다. 글을 잘 읽는 편이고 톤도 안정적이란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대기업 홍보영상이나 광고 , 극장 , 박물관 , 경기장 등의 안내방송 내레이션 분야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난 악당 역할을 좋아한다. 액션이 많고 톤도 변화무쌍 해 역동적이다. 몬스터탑에서 앙칼진 목소리의 악당이나 고스톱 게임에서 카랑카랑한 할머니 목소리 효과음에 대한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연기에는 배우의 성격이 묻어난다고 하는데 난 내숭이나 애교가 없고 솔직하게 직진하는 타입이어서 예쁜 목소리의 캐릭터는 잘 안되는 것 같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예쁘고 애절한 연기도 해보고 싶다.(웃음) 사실 성우는 평생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조연 , 한 마디라도 좋으니 내 목소리가 어떤 캐릭터에 적합할지 찾고 싶다. 열심히 할 테니 언제든 연락 주시라. 더빙 사운드 일을 병행하다 보니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잘 분석하고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
애착이라기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역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립체인저라는 애니메이션의 남아 주인공이었다.
전속이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경험이 없고 톤도 잘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다 보니 많이 헤매 후회가 크게 남았던 기억이 있다. 반면 나름 내세울 만한 캐릭터라면 우주전쟁을 배경으로 한 미국 애니메이션 스냅쉽이란 작품의 터프한 여전사 디라란 캐릭터다. 유튜브로만 방영된 데다 장민혁 선배님이 연기한 캐릭터와 썸만 타다 끝난 탓에 더욱 아쉽다.(웃음)


성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면?
성실과 끈기 , 인내심이라고 생각한다. 성우란 직업은 하루에도 수많은 역할을 연기해야 하므로 매일매일이 도전의 연속이다. 그래서 성실하지 않으면 뒤처지기 마련이다. 매일 새로운 대본과 캐릭터를 만나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또 잘나가는 다른 동료들과 비교하기 마련인데 스스로를 다독이고 기본기를 더욱 다지면서 앞으로 찾아 올 기회를 기다리는 마음도 매우 중요하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내 목소리가 큰 편은 아니지만 크게 말하지 않아도 잘 들린다고 하더라. 시간에 쫓길 때가 종종 있어 택시를 자주 타는데 목적지만 말해도 기사님들이 뒤돌아보며 “ 마스크 안 쓰셨냐 ” , “ 혹시 아나운서 또는 성우냐 ” 라며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한 기사님이 내가 아는 길과 다른 길로 가려고 할 때 “ 전방에서 좌회전인데요, 좌회전하세요 ” 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소리인 줄 알았다 ” 고 하시더라.(웃음)


오주희에게 성우란?
성우는 내 운명이다. 엄마가 물려준 목소리란 재능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 목소리를 듣고 단 한 명이라도 마음이 치유되거나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다시 태어나도 성우란 직업이 존재한다면 다시 도전할 것이다. 성우를 꿈꾸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그리고 노력하세요.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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