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글이든 그림이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 _ 독립영화관 55 _ 노경무 감독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7-22 08: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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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그림책, 단편만화, 여행에세이, 전시, 애니메이션까지 섭렵한 그녀는 욕심을 내거나 목표에 다가서려고 애쓰기보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찾아온 기회를 활용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덤덤히 말한다.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책을 내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도전을 택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역회사를 다니다 돌연 창작자의 길을 들어선 이유는?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고 전공을 살려 취직해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다가 예기치 못한 병에 걸려 모든 걸 중단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1년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치료에만 전념하던 당시 직장인 시절부터 다니던 화실의 선생님이 그림책을 내보자고 제안했다. 그림 그리기와 일기 쓰기를 좋아했지만 뭔가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어쩌다가 그림책을 내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책 출간이 직장인들의 버킷리스트 수준에서 그칠 줄 알았는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더라. 완치되면 다시 회사에 다니려 했지만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자 결국 직장인의 삶을 포기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 뭔가를 만들면서 지금에까지 이르게 됐다. 예술가를 열망했다기보다 때가 되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좋아했다는데 글로는 생각을 온전히 표현하기 힘들어 그림을 그리게 된 건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그림이 더 어렵다. 내 생각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색을 쓰고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더라. 따라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림에 모두 담기 어려워 글의 도움을 빌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책 출간, 전시 등 활동 분야가 다양하던데? 이런 걸 꼭 해야겠다라는 의도나 목표를 갖고 한 건 아니었다. 첫 그림책 ‘불에서 나온 사람’ 을 내고 두 번째로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편만화 워크숍이 있다고 얘기해준 친구를 따라가 단편만화 ‘불안을 걷다’ 를 출간했다. 또 어느 출판사에서 에세이 작가를 모집한다고 해 참여한 끝에 그림여행에세이 ‘남해여행자’ 를 만들었으며, 평소 알고 지내던 작가들로부터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시간과 정신의 만화방 2호점, 길을 만드는 여성들이란 전시회도 열게 됐다. 사실 대중의 반응은커녕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함께 작업한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뭔가를 완성해나가며 뿌듯함을 만끽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난 만화든 에세이든 스토리텔링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어디에서 더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배우기로 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 콘텐츠여서 뭔가 돌아오는 반응이 있더라. 그래서 독립출판보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거인이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파란거인은 그림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제작한 영화아카데미 단편 과정 졸업 작품이다. 집에 비해 너무 큰 몸을 가진 주인공이 밖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집에 꼭 맞는 크기의 몸을 갖게 된다는 내용인데 내 창작물을 대하는 마음과 자신감이 주위의 평가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항상 적절한 크기로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내 작품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되 자만하지 않은 태도를 지키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결말에 담았다. 다만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서도 이러한 결말에 만족할지는 의문이다.(웃음)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이란 작품의 기획 취지는? 영화아카데미 장편 과정에 지원하기 위해 만들게 된 작품으로 우리나라의 가부장제를 꼬집는 풍자극이다. 지금까지 만들어 본 이야기는 내가 직접 겪고 느낀 것에서 출발했는데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긴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할 말이 많은 주제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 친구들을 만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쏟아내던 임신을 이야기 주제로 정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마, 숙모, 사촌언니, 친구들이 임신에 마냥 행복해하지 않아 보였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고 왜 남편들은 도와주지 않을까 원망도 했다. 그래서 이런 남자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고 그들을 좀 불편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 끝에 남편도 임신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몸이 무거워 거동이 불편하고 신경이 예민해 음식도 잘 먹지 못하는 상황을 한 번 당해보라는 마음을 담았다.(웃음) 2020년 겨울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드디어 6월에 작품을 완성했다. 현재 어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할지 고민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 그림책과 만화책을 만들면서 쾌감을 느끼곤 했다. 현실과 달리 가공의 이야기에서는 내 마음대로 결말을 낼 수 있잖은가. 애니메이션은 이야기, 그림, 색, 움직임, 소리가 결합된 형태의 멀티미디어라서 그 짜릿함이 배가돼 중독되는 묘한 맛이 있다. 이제는 학교 밖에서 살아남아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기에 또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한다. 앞으로 내가 뭘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기회가 오지 않겠나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때문에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일생의 역작이 탄생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게 된다면 꼭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이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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