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음을 뒤흔든 건 2007년 우연히 극장에서 본 로보트태권브이 복원판이었다. 단조로운 사운드, 거칠고 투박한 움직임이 그 시절의 나로 데려갔다. 그때부터 수소문해 태권브이 피규어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하더니 피규어를 만드는 회사를 차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손에서 50년 만에 현대적 감각으로 리뉴얼한 태권브이가 탄생할 참이다. 시작코퍼레이션이 완전히 새로워진 로보트태권브이 애니메이션을 연말에 공개한다. 이동한 대표는 “1976년 원작의 리메이크 버전이자, 새롭게 탄생하는 태권브이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우리는 피규어 전문 회사다. 그동안 태권브이, 우뢰매, 이상한 나라의 폴, 아톰 등 고전 캐릭터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다 태권브이 영상을 복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을 떠올렸던 것 같다. 2020년부터 3년 동안 극장판 7편을 모두 직접 복원했다. 회사 차원이 아닌 개인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원본 필름을 구하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필름을 디지털화하고, 다시 4K로 복원하는 과정에 정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다. 1편은 예전에 복원된 적이 있었지만 2편 수중특공대, 3편 우주작전은 아예 볼 방법이 없었다. 4편부터 7편은 비디오를 DVD로 옮긴 수준이라 화질이 굉장히 낮았다. 복원 영상을 공개했더니 생각보다 반향이 컸다. 아직도 태권브이를 기억하고 아끼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더니 슬슬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2000년대 들어 신작 이야기는 계속 나왔지만 결국 만들어지지 못했으니까. 아무도 못 하고 있으니, 내가 해보고 싶었다. 영상 복원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작품 복원에 멈추지 않고 신작 제작까지 가보고 싶었다.

언제 공개할 건가? 스토리는 원작과 같은가?
연말 공개를 목표로 작업을 진행 중이다. 2월부터 AI 기술을 활용해 영상 제작에 돌입했다. 각본과 디자인 바이블이 명확하면 제작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한쪽에서는 영상 퀄리티를 높이는 실험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하고 있다. AI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다. CG 작업과 후반 작업도 해야 하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1976년에 개봉한 1편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메이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익숙한 이야기와 장면이 많이 등장할 거다. 영화 마지막에는 새로운 태권브이의 모습을 공개할 계획이다. 이번 작품은 완전히 새로워진 태권브이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태권브이가 다시 현재 진행형 콘텐츠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태권브이>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가?
어릴 때 가장 좋아한 작품은 사실 태권브이가 아니라 외계에서 온 우뢰매나 쏠라 123이었다. 1980년대 극장에서 만화영화를 보고 나면 마지막에 항상 같은 이름이 나왔다. 감독 김청기. 그때는 진짜 그 한 사람이 모든 만화영화를 만드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김청기란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였던 것 같다. 그러다 만화영화를 잊고 어른이 됐는데, 2007년에 우연히 태권브이 복원판을 극장에서 봤다. 그때 좀 충격을 받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대결 장면을 보니, 극장에 가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확 떠오르더라. 지금 보면 움직임이 어색하고 투박한데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그때부터 태권브이 피규어를 모으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를 관두고 피규어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지금 생각하면 인생이 참 이상하게 흘러왔다.(웃음) 김 감독님 작품이 많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건 태권브이였다. 그만큼 시대를 대표하는 캐릭터였고 여전히 영향력 있는 IP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태권브이는 단순한 사업 아이템이 아니다. 피규어를 만들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지금 하는 일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은 캐릭터라고나 할까.

<우뢰매> 복각판 출시도 활발한데 찾는 이가 많은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 태권브이는 주로 40대 후반에서 60대, 우뢰매는 30~40대가 좋아한다.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충성도만 놓고 보면 태권브이보다 우뢰매 팬들이 더 적극적이다. 구매력이나 온·오프라인 활동을 보면 우뢰매 팬층의 반응이 굉장히 빠른 편이다. 제품 판매 데이터를 봐도 태권브이보다 높다. 우리가 우뢰매 제품을 내놓기 전까지 시중에 나온 건 거의 없었다. 지금 상품들은 모두 우리가 만든 거라 봐도 될 정도다. 출시해 보니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기대 이상으로 많았다. 다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제품만 내놓으면 나타나서 구매하고 응원해 주신다.(웃음) 우뢰매 팬들이 좋아해 주시는 한 앞으로도 계속 신제품을 만들 생각이다.

이들 외에 또 어떤 IP의 제품을 선보였는지 궁금하다
몇 년전부터 달려라 하니, 비둘기 합창, 독고탁 마운드 시리즈, 머털도사 같은 옛날 만화책도 복간하고 있다. 복간을 시작한 이유도 별거 없다. 책장에 내가 좋아했던 만화를 쭉 진열해 보고 싶었는데 막상 사려고 보니 절판된 게 너무 많더라. 그래서 ‘없으면 내가 만들자’라며 시작한 거다.(웃음) 가능하면 예전 느낌 그대로 만들려고 했다. 옛 문고판과 1990년대 코믹스판의 중간쯤 되는 크기로 맞췄다. 한 권씩 늘어날 때마다 재미있고 뿌듯하다. 우리 회사는 웹툰 단행본도 만들고 있다. 솔직히 사업성은 그쪽이 훨씬 낫다. 매출도 잘 나오고 시장도 크다. 그런데 내가 별 관심이 없다.(웃음) 우리가 만든 책인데 아직 안 읽은 책도 많다. 그러나 복간 만화는 만들면서 재미있고, 책이 나오면 또 보고 싶다. 난 그런 사람이다.

사업성이 낮을 텐데 이런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결국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다. 태권브이 영상 복원, 우뢰매 피규어 제작, 만화책 복간 모두 시장조사를 먼저 하고 시작한 게 아니다. 내 장식장과 책장을 채우고 싶어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 회사가 이것만 하는 건 아니다. OEM 제작이나 일본이나 홍콩 상품도 유통한다. 개인적으로는 명동에서 베트남 음식점도 운영한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젝트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다. 본전만 찾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회사가 돈 되는 것만 하면 훨씬 편할 텐데 자꾸 다른 데로 샌다. 누가 안 만드는 거 있으면 해보고 싶고, 사라진 만화책이 있으면 다시 만들고 싶고, 오래된 캐릭터가 있으면 상품으로 내보고 싶다. 그러니 난 장사꾼보다 수집가에 더 가까운 사람인 듯하다. 그래도 신기한 건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거다. 그래서 계속한다.

출시를 준비 중인 상품이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
요즘은 만화책 복간에서 좀 더 나아가 옛 IP들을 상품화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두호, 신문수, 이정문, 윤승운, 고우영, 박수동, 이상무 선생님들의 자제분들과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콘텐츠와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그리고 태권브이 프로젝트가 잘 진행된다면 앞으로는 다른 만화들도 영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꼭 리메이크가 아니더라도 지금 세대가 볼만한 형태로 재탄생시키고 싶다. 요즘 웹툰과 달리 예전 만화들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와 개성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시대 작품들이 가진 감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만들어 보고 싶다. 단지 옛것을 소비하는 레트로보다 옛 콘텐츠가 현재형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솔직히 통할지는 모르겠다.(웃음) 그래도 일단 해보겠다. 어차피 내가 보고 싶은 작품들이니까.

앞으로의 포부는?
태권브이 영상 7편을 복원하면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그냥 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복원 작업을 하면서 ‘왜 이런 걸 아무도 안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때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란 걸 알았다. 그 이후로 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다시 꺼내놓는 일을 이어오고 있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그런 거창한 다짐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없어지는 게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일을 할 것 같다. 옛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복원하고, 책으로 만들고, 피규어로 만들고, 영상으로 만들 거다. 방법은 달라도 방향은 같다. 어릴 때 좋아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20∼30년 뒤에 그 작품을 발견하고 또 좋아하게 되는 것.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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