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재 교수와 함께하는 AI 활용 가이드] 마감을 해야 작품이 된다 - 1

김한재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9-17 11: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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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필자의 <그랬었다면> 작업 과정

 

지난 호에서는 방학 동안 진행한 AI툰 스터디 운영 과정과 그 안에서 확인한 여러 가능성을 소개했다. 매일 과제를 인증하며 한 편의 만화를 완성해가는 과정, 이야기와 콘티를 먼저 설계한 뒤 AI를 활용하는 방식, 자동화와 직접 편집 사이에서 사람이 맡아야 할 판단의 영역에 대해서도 다뤘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면 이미지는 빠르게 만들어진다. 한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만들 수 있고, 다른 구도와 다른 표정, 다른 색감과 다른 그림체를 계속 시험할 수 있다.

좋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버전이 높아질수록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해야 할 과정이 늘어나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생성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제작은 시작되지만, 작품이 곧바로 생긴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화면 안에는 작품이 아니라 작품이 될 수 있는 후보들이 쌓일 뿐이었다. 그 후보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리고, 어떤 순서로 독자에게 건넬 것인지 결정하고 의도된 편집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편의 만화가 된다.

더 좋은 버전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AI는 작업자가 멈추지 않는 한 계속 새로운 버전이 나온다. 같은 프롬프트와 레퍼런스를 가지고 내일이면 조금 더 극적인 구도, 조금 더 근사한 작화, 조금 더 화려한 배경을 요청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나와도 '한 번만 더'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잘 나왔는데 다음에는 더 좋을 것 같고, 다음 결과가 어긋나면 방금 버렸던 이미지가 다시 좋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는 그림을 만드는 시간보다 그림을 비교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기도 한다. 생성의 비용은 낮아졌지만, 선택의 비용은 높아진 것이다.

기존 창작에서도 수많은 스케치와 아이디어가 버려지는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애써 이미지를 만든 후에 버리는 일은 머릿속 아이디어를 포기하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AI 작업에서는 구체적인, 게다가 괜찮아 보이는 이미지로 훨씬 빠르게 눈앞에 나타나므로 자꾸 새로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다. 마감은 이 끝없는 비교를 멈추게 해줄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이미지가 나올 수 있을 텐데'가 아니라 '난 지금의 이 버전을 작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가'를 묻게 한다. 완벽한 결과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마감된 작품은 수많은 가능성을 버리고 하나의 방향을 남긴 결과물이다.


자동으로 만들어진 결과를 내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안병인 작가의 작품은 5일 동안 야근한 사람은 갑자기 사라진다는 괴담이 전해지는 회사를 배경으로 한다. 입사 첫날부터 혼자 야근하게 된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존재와 마주하고, 닷새가 지나기 전에 회사의 비밀을 풀어야 하는 직장호러물이다.

작가는 작업 후기에서 자동화된 결과물을 바라보며 느낀 거리감이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민 없이 자동으로 만들어진 만화는 내용과 연출이 낯설어서 내가 만들었다고 할 수 없었다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미지의 품질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그림이 잘 나왔는지, 캐릭터가 매력적인지, 배경이 정교한지를 떠나 결과물 속에서 창작자 자신의 판단이 보이지 않는다면 작품과 거리가 생긴다는 이야기였다.

 

안병인 작가의 <절대야근금지>

자동화가 한 편의 형태를 만들어줬다고 해도, 그 장면을 왜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창작자는 결과물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마감 단계에서 창작자가 해야 할 일은 자동으로 만들어진 결과를 그대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를 보고 받아들일 것인지, 수정할 것인지, 다시 만들 것인지, 아예 버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잘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장면을 남기면 작품의 방향이 생성 결과에 끌려갈 수 있다. 반대로 기술적인 결함이 조금 있더라도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의 의도에 맞는다면 그 컷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기준은 이미지의 완성도가 아니라 작품 안에서 그 장면이 맡는 역할이다. 자동 생성된 결과물이 작가의 작품이 되는 경계는 생성 순간이 아니라 승인과 수정의 순간에 있다. 마감은 그 판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든다.

스펜서 작가의 <당근라이더> 일부


연출은 작은 불일치에서 무너진다
스펜서 작가의 작품은 평범한 회사원이 아내의 톡을 받고 '당근 라이더'로 변신해 육아용품을 거래하러 가는 생활 코미디다. 거창한 세계관이나 영웅의 모험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상의 소동을 만화로 옮겼다.

작가는 후기에서 AI툰 연출의 구체적인 문제가 드러났음을 제기했다. 헬멧 디자인을 명확히 지정하지 않으면 컷마다 모양이 달라졌고, 주인공이 바라보는 방향도 프롬프트에서 세밀하게 통제해야 했다. 직접 편집과 자동화 스킬을 모두 경험한 뒤에는 '뼈대는 스킬로, 마감은 손으로'라는 결론을 내렸다.

헬멧의 모양이나 시선의 방향은 사소한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화에서는 이런 작은 요소들이 장면의 연속성을 만든다. 앞 컷에서 왼쪽을 바라보던 인물이 다음 컷에서 이유 없이 반대편을 향하면 독자는 두 장면의 공간 관계를 다시 해석해야 한다. 같은 헬멧이 컷마다 다른 형태로 바뀌면 그게 같은 물건인지, 시간이 지난 것인지, 다른 인물이 등장한 것인지 잠깐이라도 판단해야 한다. 독자가 작품을 읽으며 이런 판단을 하게 될 때마다 이야기의 흐름은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AI가 만들어낸 개별 이미지는 모두 그럴듯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듯한 이미지 여러 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만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만화의 연출은 한 컷의 완성도보다 앞뒤 컷 사이에서 성립한다. 그래서 '마감은 손으로'라는 말은 반드시 모든 장면을 직접 그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동화가 전체의 형태를 세우는 동안, 사람의 손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의미를 고정한다는 뜻에 가깝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의상과 소품을 맞추고, 시선과 움직임의 방향을 연결하고, 필요한 장면의 크기를 조절하고, 같은 의미를 반복하는 컷을 덜어내는 일. 이것이 마지막 편집에서 창작자가 해야 할 일이다. 손은 AI보다 느리지만, 독자가 어디를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김한재
·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
· 애니메이션산업, 캐릭터산업, 만화산업백서 집필진
· 저서: 생성형AI로 웹툰 · 만화 제작하기(2024)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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