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문화예술 개입, 조력자인가 감독자인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은 늘 양날의 검에 비유된다. 한편으로는 문화와 예술의 진흥을 위한 지원자를 자처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지배력으로 문화예술 영역에 개입하는 감독자 역할을 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문화예술 영역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을 받곤 한다.
한국에서도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문화예술 검열과 통제가 노골적으로 자행되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가 문화예술계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려 한다는 논란이 반복되었다.
정부의 개입이 언제나 부정적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잘못된 방향의 개입은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정부는 과연 문화예술의 조력자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 통제자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까?
공식적으로 정부는 늘 문화예술 분야에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진흥과 육성 위주의 정책을 강조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이상적인 문화 정책 방향으로 제시되어 왔다. 실제 김대중 정부시절에는 문화의 힘으로 나라를 재건하겠다는 기치 아래 각종 지원 확대와 규제 철폐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적 약속이 현실 정책 집행에서 항상 유지되고 지켜진 것은 아니다. 지원을 강조하던 정부가 겉으로는 문화 융성을 이야기하면서 이면에서는 결국 규제와 통제 위주로 흐른 사례들이 기록되었고 또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예술 정책에서 명분과 현실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원을 약속한 정부는 왜 이런 통제와 감독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문화예술 분야가 다른 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이 핵심 가치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모든 국민은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여 예술 활동의 자율성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규를 지양하고 문화예술진흥법, 문화예술후원법, 문화산업진흥법 등 지원과 육성을 목적으로 한 법률이 주를 이루는 것일 테다.
요컨대 정부와 문화예술인 간의 관계는 규제자-피규제자의 구도가 아니라 지원자-지원 대상자라는 양자 구도로 형성되는 경우가 자연스럽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문화예술분야에서는 소통과 협력이 특히 중요하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통제하기보다는 현장의 문화예술인들과 대화하며 정책을 설계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문화예술 현장은 정량적 지표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고 창작자들의 창의성과 열정이 중심 동력이 된다. 민관 협력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주체가 되는 역할을 부여하며, 지원이 필요한 부분에 적절히 자원이 배분되도록 하는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정부가 문화예술인과 충분한 소통 없이 획일적 잣대로 개입할 경우 오히려 예술 생태계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부와 민간이 파트너십을 이루어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면 문화예술의 잠재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문화예술 정책에서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 즉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널리 수용하고 있다. 1940년대 영국에서 예술지원 기금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킨 이래 정부는 재정 지원만 하고 예술의 내용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선진국들의 기본 문화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UN 또한 공직자 행동강령에 문화예술을 정치권력과 관료제로부터 거리를 두도록 권고할 만큼 문화예술의 자율성은 현대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이것이 문화예술 분야만 특별하다는 것도 아니거니와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는 자격처럼 여겨야 한다는 막연한 주장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처럼 문화예술 분야는 자율과 창의의 존중이 요구되며 수반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부의 열린 태도와 민관 협력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이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임이 분명함에도 정부는 왜 통제와 감독의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걸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짐작한다.
우선 정치적 유혹을 들 수 있다. 문화예술은 국민 정서와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집권 세력이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관리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이유로는 관료적 통제 본능과 책임성 요구 사이의 긴장을 들 수 있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담당 공무원들은 성과 관리와 책무성을 내세워 개입하려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 공공 자금을 쓰는 이상 일정 수준의 관리·감독은 필요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명분 아래 문화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기 쉽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문화예술 지원에서 정치적 개입 배제를 위한 자율성 확보와 공적자금 사용의 책임성 담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난제로 이어져 왔다. 지원 기관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도 세금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쓰이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할 경우 관료들은 위험 회피를 위해 통제 쪽으로 기울기 쉽다는 리스크도 있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한국의 문화행정은 중앙집권적이고 관이 주도하는 흐름이 강했던 역사가 길다 보니 현장보다는 관의 논리가 앞서는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지원 업무를 맡은 관료들이 전문가보다 관리자의 시각에서 문화예술을 대하는 것도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지자체의 사례를 보면 단체장이 지역 문화재단 사업에 사소한 기획까지 하나하나 간섭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경우를 종종 본다. 공연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이나 출연진 선정, 심지어 공연에서 부를 노래 한 곡까지 관여하는 등 문화예술적 전문성보다 권한 행사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여전히 현실에는 존재한다. 이런 관료주의적 간섭은 문화와 예술 현장의 독립성은 물론 창의성까지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
결국 정부의 통제 욕구는 ‘내가 돈을 대니 내 뜻대로’라는 논리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정해진 기간과 비용의 생산 라인에 맞춰 안전사고 없이 정해진 상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닌 예술가의 창조적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 지원의 목적은 예술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있어야 하며 특정 행정 관료나 정치인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을 얻는 데 있지 않음을 인지해야 한다. 정부가 예술을 직접 감독하고 컨트롤하려 드는 자세는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자칫 예술계의 반발을 불러와 정책 신뢰성마저 잃게 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일방적 관행을 바로잡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다행히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적 개선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다. 2021년에 제정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예술 지원 사업을 수행하면서 특정 예술인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작성과 같은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제재를 가하도록 명문화했다. 이러한 법적 장치는 다시는 과거와 같은 정치적 검열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법률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향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등의 기구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감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무엇보다 팔 길이 원칙의 구현이 중요하다. 정부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되 지원 결정과 집행은 민관 협력의 전문기관에 맡겨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여러 문화예술 지원 기관이 존재하지만 분야에 따라 아직 미비하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으며 여전히 인사나 예산 면에서 관료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지원 심의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정치권이나 관료가 내용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 지원 심의위원회를 구성할 때 정부가 아니라 민간의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위원을 추천·선출하도록 하고 정부는 예산 배정과 행정 지원 역할에 머무는 방식이 있다. 또한 문화예술위원회 등 중간 지원 조직에 대해 성과 평가를 하더라도 오로지 숫자로 드러나는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사회적 효과를 반영하는 중장기적 안목으로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원 기관이 성과 압박에 밀려 문화예술 현장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행동을 유발하지 않게 된다.
셋째, 소통 채널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문화예술 정책 수립 과정에서 문화예술계 현장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를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자문 역할에 그치도록 견제할 것이 아니라 의결을 할 수 있거나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또한 경험이 많고 관련 지식을 충분한 전문가를 단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협치 모델을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되는 상설 협의 기구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문화예술인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누군가는 공석에서 대놓고, 문화예술인은 제한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고를 칠 수 있는 철부지 혹은 외형만 다자란 채 미성숙한 감정만 앞세우는 고집불통이라고 발언하는 것도 봤다.
과격한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다. 문화예술인 또한 공적 대화를 원활하게 이끌고 유도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키워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 관계자나 공무원들도 그들이 지닌 예술적 창조 에너지의 원천과 근본을 들여다보고 의도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이때 상호간 문화예술의 전문성과 독창성 그리고 공무원의 행정 능력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제도와 사람 모두 변화해야 하며 법과 문화예술의 관계에서 혁신이 이뤄져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는 정부 관계자들이 문화예술을 통제와 감독의 대상이 아닌 지원과 협력의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앞서 정리한 바와 같이 정부가 문화예술 분야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민간 협력의 강화를 실현하면, 진정한 문화 강국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문화예술은 한 사회의 정신적 자산이며, 경제적 가치로도 연결되는 잠재력이 있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건강한 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면, 우수한 문화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창출되어 한류와 같은 소프트 파워로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은 이미 다양한 사례로 증명되었다. 또한 문화예술이 발전하면 국민의 삶의 질과 창의적 역량도 함께 향상되어 사회 전반의 혁신 에너지가 커진다. 이러한 선순환은 다른 산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쳐 창의와 융합이 요구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민국의 강력한 자산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가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자유와 협치는 곧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정부가 문화예술인을 대등한 파트너로 존중하고 민간의 자율에 맡길 줄 아는 국가는 다양한 목소리와 창조성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가 된다. 이는 정치·경제 영역에서도 포용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토양이 될 수 있다. 반면 문화예술을 통제하려 드는 사회는 경직성과 획일화로 활력을 잃기 마련이다. 결국 소통과 협력의 문화정책은 단순히 문화예술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제인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지원과 간섭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거울 삼아, 정부가 한 걸음 물러서서 문화예술계와 손잡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창작의 자율을 보장할 때 비로소 진정한 문화 융성을 이룰 수 있다. 정부가 조력자로서 제 역할을 하고 문화예술인은 창의적 주체로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는 풍토가 정착된다면 한국의 문화예술은 더욱 풍요롭고 강건해질 것이다.
소통과 민관 협력을 통한 문화 정책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정부의 지원이 통제가 아닌 진흥으로 온전히 기능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문화예술 강국으로서 지속가능한 발전과 국민 행복을 함께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서범강
·(사)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아이나무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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