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고물가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서 애니메이션계에 자금줄이 마르고 있다. 만성적인 ‘돈맥경화’에 시달리는 제작사들의 줄도산 우려가 커지면서 애니메이션산업의 위기감도 고조되는 상황. 이에 문화체육관광부 자문 기구인 애니메이션진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탁훈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애니메이션산업을 견인해야 한다”며 “애니메이션 전문펀드를 부활시키고 출자금을 늘려 민간투자가 활성화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원사업과 펀드의 성격은 다른가?
지원사업은 단발성에 가깝다. 하나의 과제로서 결과물을 기한 내에 계획대로 만들어내면 끝난다. 많은 사람을 투입해 장기간 제작해야 하는 콘텐츠의 특성에 비춰보면 사업비도 다소 제한적이다. 정부자금과 민간자금이 결합한 펀드는 지속성이 있다. 심사에서도 사업성을 눈여겨본다. 자금을 신청하는 목적과 계획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정부가 내년까지 애니메이션 펀드에 500억 원을 출자키로 했던데?
문체부가 2021년 6월에 발표한 애니메이션산업 진흥 기본 계획에 담긴 내용이다. 당시에는 금액이 적더라도 차츰 늘려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어서 모두 환영했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흐지부지됐다. 예전에는 영화 펀드, 드라마 펀드, 애니메이션 펀드처럼 콘텐츠 장르별 펀드가 따로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대신 문화산업 펀드란 이름으로 통합해 운용사가 자율적으로 운용한다. 애니메이션에만 투자하라고 한 구분선을 없애니 돈 되는 쪽으로만 자금이 몰리고 있다.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수익 배분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애니메이션 분야가 수익성이 낮아 출자자나 운용사 쪽에서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열성을 다해 만들어도 수익이 안 나니 사실 찬밥 신세다. 그렇지만 오징어게임이란 작품을 한번 보자. 2021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어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뉴스가 쏟아졌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반면 슬램덩크란 만화는 어떤가. 30년 전에 나온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다시 개봉해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뽀로로는 나온 지 20년 됐지만 아이들의 사랑은 여전하다. 일본의 도라에몽도 마찬가지다. 이게 애니메이션의 힘이다. 세대를 건너뛸 정도로 오래가는 수익원이다. 영화, 드라마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소비 주기가 길다. 작품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상품으로도 연결돼 제조업이나 소비재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크다. 이런 걸 보면 인식이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애니메이션 전문 펀드가 존재해야 할 당위성은 무엇인가?
어릴 적 가슴에서 미사일이 나가고 팔이 잘려나가는 로봇물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국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다. 제3세계에서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다. 아이들의 정서나 의식이 바르게 자라도록 돕는 애니메이션이야말로 나라가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기간산업의 하나라고 본다. 더욱이 게임,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등 영상에서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은 콘텐츠산업을 떠받치는 원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로보카폴리, 브레드이발소, 미니특공대, 극장판 뽀로로 등 수없이 많은 작품이 애니메이션 전문 펀드를 받아 탄생했다. 작품이 흥행해 회사가 성장하고, 증시 상장으로 이어져 투자가 활성화돼 유관 업체들도 동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이 바로 애니메이션 전문 펀드다.
그렇다면 정부가 어떤 기조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2014년, 2018년, 2020년에 전문 펀드를 운용했는데 지금은 장르별로 구분하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조다. 부처의 의사 결정권자가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펀드 운용 방식이 달라졌는데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게 매우 아쉽다. 결국 수익성이 펀드의 존폐를 좌우하는데 정부가 투자 운용사처럼 단기 수익률에 매달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간이 주목하지 않는 분야일수록 출자 비율을 높여 꾸준히 운용하는 게 중요하다. 영화나 드라마는 민간투자가 원활하니 상대적으로 소외된 애니메이션 분야를 선별적으로 지원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특히 시류나 트렌드에 편승하지 말고 한 분야에 집중했으면 한다. 3D TV, 메타버스에 돈을 쏟아부은 결과가 어땠나. 투자운용사보다 산업의 이해도가 높은 전문 기관이 펀드를 운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저작권자ⓒ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