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애니메이션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9-02 08: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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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서울산업진흥원(SBA)의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 중단에 대한 애니메이션업계의 집단 반발 사태가 일단락됐다. 사업은 유지하되 지원 규모는 대폭 줄이는 선에서 갈등이 봉합되는 모습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로 단편 애니메이션의 의미를 되새기고 공공부문의 지원 필요성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SBA, 6,000만 원에 총 3편 지원키로
관련업계에 따르면 SBA는 지난 5월 콘텐츠본부(옛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의 예산을 지난해 40억 원에서 올해 12억 5,000만 원으로 대폭 삭감함에 따라 단편 애니메이션(10편)을 비롯해 웹 애니메이션(10편), 상업 애니메이션(1편) 지원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SBA 측은 지원대상 범위를 애니메이션에서 웹소설, 웹툰, 드라마, 캐릭터 등으로 확대하고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 방식을 변경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애니메이션 관련 협단체가 모인 애니메이션 발전연대는 공동성명을 내고 “지원사업 중단은 산업 발전의 생명력인 다양성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단편 애니메이션 창작자를 다 죽이겠다는 결정” 이라고 비판했다.
연대는 “갑작스러운 제작지원 중단은 자신들의 성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 이라며 지원사업 복구와 사업규모 확대, 중장기 계획 마련을 촉구했다.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던 SBA와 애니메이션 발전연대는 논의를 거듭한 끝에 지난 7월 단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작지원은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지원 규모는 당초 3억 원에서 6,000만 원으로 대폭 줄었다. 그간 3,000만 원씩 10편을 지원했지만 2,000만 원씩 3편만 지원키로 한 것.
SBA 측은 지원해야 할 콘텐츠가 많지만 전체 예산이 줄어 사업의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형윤 독립애니메이션협회장은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한 번 없어지면 다시 복구하기 힘든 지원사업을 그대로 유지했고 앞으로 주기적으로 만나 소통하기로 한 만큼 논의의 불씨를 살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시의원과 담당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소통, 협력하면서 지원예산이 더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고 덧붙였다.
현재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지원하는 기관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SBA 콘텐츠본부다.
콘진원은 장편과 단편을 포함한 독립애니메이션 16편 제작에 총 10억 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원자들이 사업자 형태를 갖추어야 하고 실질적으로 제작을 도맡은 본인의 인건비를 책정할 수 없다는 제약이 뒤따른다. 이에 비해 SBA는 지원자도 인건비를 책정할 수 있는 등 지원요건이 상대적으로 유연해 창작자들의 지원율이 높다.

 

 

 

해외 영화제 잇단 수상, 영상판매도 활기
지난 1999년 이성강 감독의 작품 덤불 속의 재가 최초로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비디오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한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국산 단편 애니메이션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해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문수진 감독의 작품 각질이 초청을 받았고 정유미 감독의 존재의 집은 제7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단편 애니메이션 시상식 2021 디지콘6 아시아 본선 어워드에서는 전승배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건전지 아빠가 은상을, 트리키 여성영화제에서는 박지연 감독의 작품 유령들이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SBA의 지원을 받은 김경배 감독의 작품 아멘 어 맨(AMEN A MAN)은 북미 최대 규모의 장르 영화제인 제26회 캐나다 판타지아영화제에서 단편부문 금상을, 김창수 감독의 사라지는 것들은 은상, 박성배 감독의유캔플라이는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국산 단편 애니메이션이 각종 해외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사례가 늘면서 영상판매도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김현주 감독의 마이 차일드(My Child)는 프랑스 배급사 휘핏과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에서의 개봉을 전제로 5년간의 극장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허수영 감독의 조금 부족한 여자는 미국, 프랑스와 배급판권 계약을, 김강민 감독의 꿈과 박지연 감독의 유령들, 이상화 감독의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Misery Loves Company)는 스페인 방영을 위한 판권 계약에 성공했고 김리하 감독의 마스코트는 덴마크에 교육용 판권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공공부문 적극 지원 나서야”
업계는 이처럼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의 제작 활성화를 위해 공공부문이 더욱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사라지면 다양성이 줄고 신진 창작자들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막혀 결국 산업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양성과 참신함을 추구하는 창작자들이 만드는 단편작품들은 애니메이션산업을 지탱하는 풀뿌리이자 역량 있는 감독을 배출하는 인큐베이터 같은 것” 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상업성에서 자유로워야 창의성, 가능성, 실험성이 발휘될 수 있다” 며 “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적 영역이 지원에 적극 나서 제작 활성화를 이끌어야 한다” 고 말했다.
장 회장은 “수많은 인디밴드가 결성되고 수많은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애니메이션도 단편작들이 더 많이 나와야 산업의 생태계가 풍성해지고 기반이 더욱 튼튼해질 수 있다” 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히트작 지옥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처럼 단편 감독 출신들이 상업작품 영역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며 “창작자들이 경험을 쌓으면서 산업으로 편입돼 성장을 견인해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나가려면 단편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이 절실하
다” 고 덧붙였다.
한편 조현래 콘진원장은 지난 5월 국제영화제에서의 잇단 수상소식과 관련해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기에 독립애니메이션 제작은 공적 영역에서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분야” 라고 밝혀 향후 독립애니메이션 제작지원 확대를 시사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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