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주인공인 그림을 그리는 무명작가 은상. 여느 날처럼 인스턴트 도시락을 먹던 중 이상한 식감을 느끼고, 그게 파리라는 걸 알게 된 그녀는 불안감에 휩싸여 나머지 파리를 소화하기 위해 뱃속에 음식을 밀어 넣는다. 한현지 감독의 <소화불량>은 고조되는 긴장, 숨 막히는 공포가 느껴지는 강렬한 연출로 몰락하는 주인공의 잔상을 오래도록 남긴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웠다. 애니메이션을 업으로 삼아 열심히 만드는 중이다. 작년에 열린 제21회 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서 소화불량이란 작품으로 독립보행상을 받았다.

<소화불량>은 어떤 이야기인가?
작가 데뷔를 원하는 무명의 그림작가가 작품 주체인 파리라는 소재에 매몰되어 잡아먹히고, 나중에는 자신이 파리가 돼 삶의 주체까지 뒤바뀐다는 이야기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나머지를 모두 포기하는 사람의 욕망과 집념을 공포 장르로 풀어냈다. 마지막에는 공모전이라는 작은 목표도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고되고 힘들어도 꾸역꾸역 소화해 내려는 창작자의 마음을 장기가 음식을 소화하는 활동과 연결했다.

무엇에서 영감을 받아 영상을 구성했나?
공포 게임물에서 영감을 받아 비주얼을 표현했다. 영상의 전반적인 무드를 설정할 때는 TV시리즈 애니메이션 치비 마루코짱, 짱구는 못말려로 유명한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님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강렬한 색감을 떠올렸다.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방 안의 구멍을 발견한 뒤 위로 빨려 들어가면서 파리로 뱉어지는 장면이다. 소화불량이란 의미를 함축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계속 소화해서 아래로 내려보내고 싶지만, 다시 위쪽으로 역류해서 토해낸 것이 바로 자신의 창작물이었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가 어쩌다 한번 소화되는 게 창작 활동 같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입시 미술부터 시작해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는데 할 수 있는 걸 찾아 계속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애니메이션 만드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 하지 않으려고 멀리한 적도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적성에 맞는 부분이 있어서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의도한 대로 움직이거나 비주얼이 구현될 때 느끼는 성취감이 정말 좋다. 소화불량은 두 명의 PD와 머리를 맞대고 수없이 얘기를 나누면서 하나씩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참 좋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누군가와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 기분이 좋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볼 만한 시나리오를 내가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재가 뭘까 생각했는데 나와 내 작업공간밖에 떠오르지 않더라. 그때 내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실감했다. 다음 작품을 만든다면 좀 더 바깥과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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