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69] 당연한 것에 질문 던지는 게 내 기질, 임채린 감독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3-09-25 08: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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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작년에 손목 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았어요. 그간 5개의 작품을 만들면서 조금씩 통증을 느꼈는데 결국 사달이 났던 거죠.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아직도 몇 시간 이상 작업하면 신호가 와요. 그래서 되도록 손목은 안 움직이고 어깨와 팔꿈치만 움직여 그리죠.” 임채린 감독이 직업병을 호소하면서도 그림을 놓을 수 없는 건 세상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질문 때문이다.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해달라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CalArts, 칼아츠)에서 실험애니메이션 석사과정을 마쳤다. 창세기(The Genesis, 2017), 꽃(Flora, 2018), 메이트(Mate, 2019), 아이즈 앤 혼즈(Eyes and Horns, 2021), 나는 말이다(I am a Horse, 2022) 등의 작품을 만들어 주로 젠더 이슈에 대해 얘기했다.


움직이는 그림의 매력은 무엇인가? 

자유롭다고 해야 할까. 즉흥적인 느낌대로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게 바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학 다닐 때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고 싶었는데 갈수록 그림이 뻔해지더라. 그러다 우연히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캐릭터나 대사, 전개 방식이 비슷해 식상했다. 그걸 보고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이 많지 않아 더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꽃(Flora, 2018)

 

  

메이트(Mate, 2019)

 

작품에 담는 자신만의 시선과 추구하는 가치는? 

그간의 작품에서는 주로 페미니즘을 다뤘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던지고 싶은 질문은 뿌리 깊은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에 관한 것이다. 내게 페미니즘은 고정관념이란 카테고리의 하위 개념에 불과하다. 여자가 성에 대해 질문하면 인격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싫었다. 작품을 만든 작가의 위치나 지위, 성별이 작품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행태에도 반감이 들었다. 내 작품은 여자라서 소외당하고 불평등을 감내해야 하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대해 한풀이하는 느낌이 짙다. 당연하다는 관습에“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내 기질인 것 같다.


서사보다 이미지와 움직임으로만 표현하던데? 

미리 기획하기보다 그때그때 생각과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무언가를 정확히 인지하기 전에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즐겁다.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감정도 그림을 그리고 나서 깨닫기도 한다. 사실 처음부터 뭔가를 기획하고 한 장씩 그려나가는 게 나와 맞지 않더라.(웃음)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지원사업을 받으려면 주제와 계획이 명확해야 하기 때문에 서사 구조를 먼저 짜야 한다.(웃음)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건 여전히 낯설다. 그래서 그림을 먼저 그리고 여러 그림을 카테고리별로 나눠 구조를 만들어나간다.

 

재료와 기법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의미가 있나? 

나는 말이다란 작품에서는 이중섭 화가의 은지화(담배를 싼 은박지에 드로잉을 한 그림), 아이즈 앤 혼즈에서는 피카소의 판화 기법을 활용했다. 이들 화가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주 소재와 대상은 남성과 백인이다. 그들의 화풍이나 기법으로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비틀어보려고 했다. 난 자기 복제를 싫어한다. 같은 게 반복되는 걸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매 새로운 작품마다 예측 불가능한 걸 즐긴다. 스릴 넘치고 새로운 걸 추구하려는 욕구가 있다.


장편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나? 

지금까지는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논내러티브 방식으로 단편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중편물도 만들어보려고 한다. 중편은 맺고 끊는게 확실해야 한다. 흐름이 중요하다. 그래서 작년 12월부터 이야기를 만들어 스토리보드도 준비했는데 10월 덴마크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해 완성할 계획이다. 국내 지원사업이 줄어드는 상황이라 외국에서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아이즈 앤 혼즈를 만들면서 여러 백인 남성에게 갑질을 당한 적이 있다. 이번 작품은 갑질에 한이 맺힌 영혼들이 응징에 나서는 이야기다.(웃음) 드라마, 호러 장르인데 그간의 작품 세계를 넘어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서사가 들어가니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대중의 시선으로 작품에 접근해보려고 한다.

 

  

아이즈 앤 혼즈(Eyes and Horns, 2021)


  

나는 말이다(I am a Horse, 2022)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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