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의 영화편지]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아가미'

안재훈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10-08 14: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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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 _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
<아가미>는 불의의 사고로 아가미가 생긴 곤을 통해 주변 인물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기는 이야기다. 곤에게 아가미가 생긴다는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캐릭터의 특수성을 만들지만, 아가미는 곧 우리 삶의 상처가 삶을 나아가게 하는 호흡기가 된다는 보편적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삶의 우연한 불행이 만들어낸 생채기는 한없이 덧나 커다란 흉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모순을 이 영화는 얘기한다. 곤을 통해 사랑과 이별을 배우며 어른이 되는 강하, 자신의 생명을 구원받은 해류, 그리고 시선을 훔치는 아름다운 작화를 통해 한 편의 극영화로 탄생한 <아가미>는 동화적인 이야기로 현실의 삶을 빗대어 보게 한다. 곤에게 아가미가 생긴 걸 보며 어쩌면 우리가 안고 사는 아픔들이 우리를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지 모른다는 커다란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

한 해 자살한 초중고생 244명. 역대 최고치를 찍은 지금, 죽긴 무섭고 살고 싶지 않은 감각이 일상화된 현대의 청년들에게 <아가미>는 꼭 필요하다. 어떠한 불행도, 짐을 떠안고 있는 당신 때문에 찾아온 게 아니다. 그저 얼굴도 모르는 지구인들의 이유 없는 의도들이 모여 만든 우연일 뿐이다. 그래서 <아가미>는 자책할 필요도, 누굴 탓할 필요도 없다는 인간적인 위로를 건넨다.

우린 아가미를 찾아야 한다. 파도처럼 닥쳐오는 이유 없는 불행, 뜻 모를 생채기를 그저 상처로 놔두기에 인생은 길고 즐거운 일이 많다. 그것들을 숨구멍, 아가미로 만들어야 한다. 회색 콘크리트 빌딩 숲의 서울, 이웃 주민의 이름조차 모르는 2026년 대한민국에서 각자의 아가미를 위해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수민 _ 중앙대학교 재학생
어린 곤을 뒤로한 채 의사가 강 노인에게 말한다. 아이란 한 집안의 부서지는 관계를 지탱하는 일종의 축과 같다고. 아이란 사람들 사이사이에 닻을 내리는 존재이며, 그런 아이에게는 갖추어진 제도 속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명명이 부여돼야 한다고. 이에 자신을 둘러싼 언어들을 향한 회답처럼 어른이 된 곤은 솔직하게 답을 건넨다. "이름을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그냥 원래부터 있던 거라서요. 중요한 건 이게 살아 숨 쉬고 빛나는 곳에 있느냐는 거겠죠." 

 

 

쓸모없는 것과 가치 있는 것. 가치 있었지만 쓸모없게 된 것. 상처이기도 하지만 숨길이기도 한 것. 아가미는 상처이자 숨길이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아가미가 돋을 때, 살은 딱 한 번 찢기지만 숨결은 멈추지 않고 몸 안을 돌면서 나를 이룬다. <아가미>에서 내가 들은 질문이다. 네 상처는 아가미가 아니냐고. 그 상처가 너를 살게 만들고,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 아니냐고. 너다운 구석을 몸속 어딘가에 남기지는 않았냐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아가미로는 무엇이 있을까. 곤의 아가미는 타의가 남긴 상처의 형태지만, 아가미는 스스로 내린 선택에 의해서도 돋아날 수 있다. 얻은 것 없이 보냈지만 추억으로 남은 시절 같은 것 말이다. '그때 생산적인 일을 했더라면'이라고 구박을 듣기도, 스스로 질책하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을 테다.

내겐 더 이상 취미가 아닌 10대 시절의 취미 활동은 만화 그리기였다. 말 잘 듣는 또래들이 책과 문제집으로 머리를 키워나갔을 열네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여가 시간을 온통 그림 그리는 데에 쏟았다. 왜 돈 받고 안 파느냐는 칭찬, 학교에서 제일 잘 그리는 애로 소문났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대학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미술을 생업의 토대로 길러나갈 용기까지는 없었다. 평범한 공부에 몰두해온 지금 다시 그려보자니 손이 굳어서 바라는 만큼 그려지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 보기조차 싫어져 다시 그리기를 포기한다.

그렇게 그림을 완전히 잊고 지낸 지 2년쯤 되었다. 가족과 내 중고교 시절을 떠올리며 얘기 나눌 때마다 그림은 그저 '시간을 버린 일'이라는 식으로 거론된다. 그때 그림에 쓴 시간을 다른 공부에 썼더라면 어디에 도달해 있었을까. 아예 그림에 제대로 투자했다면 전혀 다른 선택지가 열리지 않았을까.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전념하는 캐릭터들을 보면 눈물이 나온다. 잊었던 꿈을 향해 다시 달려보라는 대사에는 화가 난다. 인정한다고 아픈 구석이 어디 가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가고, 과거가 남겨 뜯어낼 수 없는 아가미는 여전히 내 몸에 자리한다.

상처는 보이지만 숨결은 보이지 않는다. 내 아가미를 그저 상처인 줄 알고 아픔만 남겼다고 묻어두진 않았을까.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아름다운 물속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녹색 호수 바닥이든, 청록빛 수영장 물이든 덕분에 나는 남들과 조금 달라진다. 달라서 특별해지고, 특별해서 살아있음도 느낄 수 있다.

 


김치현 _ 중앙대학교 재학생
해류의 대사처럼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가미도 없이 물속에 던져지는 존재다. 그게 강이든, 바다든, 호수든 구별 없이. 우리가 빠져드는 물은 대개 진창이다. 그래서 삶의 지속은 차라리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더 늘리는 일로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을 택한다. 택하고 싶다. 나의 삶뿐 아니라 너의 삶 또한 택하고 싶다. 아가미도 없이 거친 물살을 헤쳐나가다 보면 어느새 물속에 산재하는 이물질로 인해 몸은 온통 상처로 뒤덮인다. 칼로 도려내다 만 것 같은 상처로 보이는 곤의 아가미는 실은 깊은 물속에서도 숨을 쉬게 해주고, 그로 인해 몇 명의 삶을 구했다.

앞서 말했듯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 곤의 그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혹은 타인의 눈엔 그저 상처로 보일지라도. 상처를 닮았으나 결국은 숨 쉬게 하는 아가미처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한 조각의 감정과 한마디의 호흡이 있다. 어떤 상처는 다른 이도 그러한 상처를 지니고 있음을 아는 순간 아가미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바닥없는 물이기에 끊임없이 헤엄쳐야 한다. 발을 디딜 수 없으니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함께 헤엄치고 있는 또 다른 존재에게 기댈 뿐이다. 지치고 상처 입은 몸을 타인에게 기대고, 나 또한 타인이 기댈 부표가 되어주어야 한다. 아가미도, 부레도 없는 우리는 그렇게 삶을 지속한다. 그렇게 서로가 얼마나 오래도록 또는 눈부시게 살아 숨 쉬는지를 지켜본다. 보아준다. '그래도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지켜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방식은 다르지만 <아가미>의 등장인물이 보여주듯 '지켜봄'은 서로의 삶을 구원하고 지탱해주는 데에 필수적인 연대의 방식이다.

영화 속 강하가 지어준 곤이라는 이름의 기원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눈부신 빛과 따뜻한 색감은 깊은 진창 속에서도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떻게든 살아내는 이들의 미소가 얼마나 단단하고 찬란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언제든 자신을 떠날 것만 같은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하의 눈동자와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걸어온 이에게 항상 뒤를 돌아 다정하게 지어주는 곤의 표정이 오래 마음에 머무른다.(본문의 인용문은 소설 <아가미>에서 끌어왔습니다)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밀꽃·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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