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현실 속에서 찾아낸 이야깃거리를, 그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작업해왔다. 그래서 매 작품이 마치 다른 사람의 작업인 듯 낯설고 새롭다. 보이지 않는 이면의 세계와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온 정승희 감독을 만났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단편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어려서는 눈에 보이는 거라면 뭐든지 그리고 싶어 했는데, 성장하면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아져 주로 그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단편 애니메이션은 허기, 정글, 빛과 동전, 우주보자기, 안개 너머 하얀 개 등이 있다.

최근작 안개 너머 하얀 개는 어떤 작품인가?

안개 너머 하얀 개는 올해 완성돼 부산국제단편영화제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 등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예전에 어느 봄날, 안개가 지독하게 심해서 눈앞만 보이고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경험을 했다. 주변에 존재했던 사물들이 모두 사라진 듯 불확실한 안개 속에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고, 안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안개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존재할까. 어쩌면 또 다른 안개 속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보이지 않는 세계로 한 걸음 내딛는 것과 그곳에 머무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얀 개와 소녀의 만남을 통해 풀어가려고 했다.

작품이 변화해온 과정이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모든 작품이 당시 나의 현실과 고민 속에서 나온 것 같다. 허기를 만들 때는 삶의 지표를 잃고 방황하던 시기였고, 정글을 만들 땐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세상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고 있다고 느꼈다. 다들 잘 살기 위해 밤낮 없이 일을 하는데 그럴수록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이 다시 빛과 동전으로 이어졌다. 그 뒤 개인적인 사정으로 석 달 정도 다른 나라에 머물 기회가 생겨 내 작품과 인생을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구조적이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면 그 이후부터는 세상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어떤 감성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좀 더 고민하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주보자기이고, 최근작인 안개 너머 하얀 개에까지 이어졌다.

<안개 너머 하얀 개>

<우주보자기>

<우주보자기>

<우주보자기>

<우주보자기>

작품마다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일종의 자기 표절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래서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는 편인데, 작품의 주제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저절로 스타일이 달라졌다. 특히 우주보자기는 표현 방식과 이야기가 함께 떠오른 작품으로, 보자기라는 형식 자체가 표현하려는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빛과 동전>

<빛과 동전>

<빛과 동전>

<빛과 동전>

공백기를 이겨낸 창작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창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어주는 원동력이고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다. 창작의 과정은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을 동반하지만, 창작하지 않는 순간에 찾아오는 존재론적 고민이 내게는 더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공백기에도 스토리보드나 시놉시스 작업 등으로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었다.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의 지원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꽤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지원 방식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해외 영화제 수상 가능성이 평가 항목에 있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 나는 단편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은 생태계 보존을 위한 멸종동물 보호 지원과 같은 관점에서 보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종의 다양성이 생태계 건강의 기틀이 되듯, 다양한 문화적 자산이 쌓여야 더 좋은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하다

현재 보이지 않는 눈이라는 작품을 작업 중이다. 흑백 톤의 작품이지만 안개 너머 하얀 개보다 강렬한 느낌이 될 것이다. 내년 초까지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 모순, 부조리함,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존재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왔고, 그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 작품을 만들어왔다. 앞으로도 잘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것들의 모습과 소리를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정승희 감독

·<허기> (1997)
·<정글> (2002)
·<빛과 동전> (2004)
·<우주보자기> (2015)
·<안개 너머 하얀 개> (2018)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18.10월호 
<남주영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