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권홍상 감독의 <완벽하게 바다를 건너다>는 매일매일 반복된 일과를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고 했던 한 남자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하늘은 높고 바람이 부는 날>은 어느 날 한 남자의 일상에 평범한척하지만 독특한 쥐 한 마리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일상과 일탈, 그 사이에서 차곡차곡 쌓여나가는 인생들. 오늘이라는 점을 하나씩 찍으며 꾸준히 이야기를 공부하는 권홍상 감독을 만나보았다.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계기는? 권홍상이다.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을 좋아하는 만화 키드였다. 부모님이 사주셨던 디즈니 만화영화 비디오 세트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면서 자랐고, 학교에서 유행하던 만화책을 돌려보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절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를 보고 큰 인상을 받아서 ‘아, 나는 이걸 해야겠다’ 고 결심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웹툰을 그리며 이야기를 공부하고 있다.

최근작인 <완벽하게 바다를 건너다>에 대해 소개해달라.작품을 만든 계기는? 자기만의 생활을 갖고 있는 한 남자가 한 여성을 만나면서 생긴 일상의 일그러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예민하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특히 처한 상황이나 여건들, 나아가 관계 같은 것들이 변하려고 할 때는 겁이 나곤 한다. 특히 관계에 있어서 연애만큼 가까운 건 없었고, 그때 한 친구를 만나게 됐다. 나와는 아주 다른 타입이었던 그사람으로 인해 지금까지 지켜온 것들이 깨부숴질 정도의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을 계속 만나고 싶고, 좋아하고 싶었다. 그러자 생각이 조금씩 트이는 것 같았다. 사실을 아는 것과 사실을 깨닫고 바뀌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관계뿐 아니라 지키려고만 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내려 놓는 변화들을 겪었다. 그때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작품 속 ‘관계도, 사람도, 모든 게 그렇게 일그러짐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라는 대사는 이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작품 속의 개체들은 제각각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의도로 표현한 것인지?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 만의 완벽함에 대한 기준이 있고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일이라면 이렇게 되는 것이 옳아’ 같은. 그것은 완벽함에 대한 기준임에도 사람들마다 매우 다른 모양을 띨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내가 생각했던 기준이 일그러지는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같은 환경에 처했더라도, 각자가 생각하는 완벽함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각 다른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부분들이 개인에 대한 본질을 규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사람을 외형화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이 부는 날>에 대해서도 소개해달라 어느날 갑자기 주인공의 집에 쥐가 나타난다. 말을 할 줄 아는이 쥐는 주인공의 방 한구석에 앉아 주인공의 책을 자기 것인양 편하게 읽는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삶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당시의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세상이 갑자기 변할지언정 그저 우주의 한 점인 우리가 무슨 상관이랴, 호탕하게 웃으며 편하게 살아야지’ 하고. 이 작품을 만들고 5년 후에 <완벽하게 바다를 건너다>를 제작했는데, 그사이 내 안에서 바뀐 일상이나 변화들이 작업하는 동안 자주 떠오르곤 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이 부는 날>은 현실과 판타지가 만나는 지점이 독특하다 사실 현실과 판타지, 이 둘이 완벽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판타지이고 허구가 아닐까. 어떤 이야기가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두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판타지 세계를 다룬 ‘왕좌의 게임’ 같은 작품도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 만약 내가 만든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 왔다면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을 두드렸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말하는 쥐가 등장하니 이 작품이 판타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는 쥐가 나오는 이유는 내가 만든 것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이니까 말하는 쥐가 직관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 작품 모두 일상과 일탈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무엇을 더 우선하는지? 일상이 있어야 일탈이 가능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일상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매우 노력하는 편이고, 매일 꾸준히 쌓아가는 경험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최근에는 제대로 이야기를 공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기 위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미래에 대해서만 계속 고민한 나머지 바로 지금, 오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결국 지금 이 순간 하나하나 찍어나가는 점들이 모여서 면이 되는 것인데 말이다.

두 작품 직접 목소리 작업을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두 작품 모두 내 목소리와 맞아서 작업이 가능했던 것이지, 반드시 직접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이 부는 날>은 그림체가 단순하고 등장 인물들도 흐리멍덩한데, 진지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하니 거기서 발생하는 갭이 상당히 재미있게 느껴졌다. 또 <완벽하게 바다를 건너다>는 감정을 절제한 목소리로 하면 될것 같았다. 사실 대사 작업보다 재미있는 건 음향효과와 사운드다. 선 하나가 움직이더라도 ‘훅’ 소리가 나는 것과 ‘후웅’ 소리가 나는 것은 다르다. 화면과 소리가 맞아떨어질 때 주는 쾌감이 굉장하다. 애니메이션은 화면과 대사, 음향 모두가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게 재미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애니메이션은 재미있다. 대학에 진학해서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게 됐을 때, 그저 종이 위에 그림 몇 장을 그렸을 뿐인데 그것을 넘기면 움직임이 생기고 생명이 생기며 캐릭터가 생기는 것이 정말이지 재미있었다. 그것이 이야기가 되고, 그모든 걸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일 지경이었다.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시작한 뒤 다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보니 ‘이건 진짜구나, 천재구나’ 싶었다. 살다가 문득 넘기 힘든 큰 산을 만날 때가 있다. 그순간 절망감이 들 때도 있지만 벅차오를 때도 있는데 애니메이션은 벅차오름을 느끼게 한다. 그럴 땐 제대로 이 세계를 탐험하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오른다.

향후 작품 계획은? 애니메이션 만드는 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반드시 애니메이션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선 지금은 웹툰 작업을 하며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 자꾸 생각나곤 한다. 장면들이 떠오른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장면을 넣으면 좋을 텐데 하고. 그런 것들을 머리 한구석에 저장해두곤 한다. 애니메이션을 계속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계속할 것이다. 예전부터 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고,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애니메이션이 될 수도, 웹툰이나 책이 될 수도 있다. 계속 이야기에 대해 공부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계속 공부하고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 할 수 있겠다.

권홍상 감독

·<하늘은 높고 바람이 부는 날> 2014

·<완벽하게 바다를 건너다> 2019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6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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