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1979년부터 30여 년간 배경 미술에 몸담아온 유병노 감독은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다. 어느 장소든 직접 그려야 하는 직업인 만큼 작업에 도움이 되는 자료라면 무엇이든 사고 모으며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기 위해 항상 노력해왔다. 긴 시간 작업에 몰두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뿐이었다던 그는 현재 아름다운 수묵화와 산수화를 선보이며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초인간이 꿈이던 아이, 배경 감독이 되다

어렸을 적 유병노 감독은 그림을 좋아하는 비범한 아이였다. 만화책을 따라 그리는 것을 즐겨 했고, 축지법을 쓰는 초인간이 되겠다며 집 근처의 비봉산에 많이 올랐다고 한다.“ 어릴 때 매일 무협지를 보고 하니 부모님이 역정을 내실 때가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고집이 매우 셌다고 생각 해요”라며 그때 일을 회상했다. 이후 그는 축지법을 실현 하지 못한 것을 애니메이션에서는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해 배경 미술에 입문하게 된다. 1979년 반포의 한 회사에 공채로 입사하며 애니메이션 업계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완벽한 작품을 위한 노력

입사 후 회사의 타이트한 스케줄이 버겁게 느껴진 그는 가스불에 작품을 말려야 할 정도로 늘 시간에 쫓기기 일쑤였고, 질보다는 양이 우선시되면서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조금씩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당연시되는 야근과 갈수록 촉박해지는 일정에 항상 쫓기다 보니 몸과 마음은 늘 긴장된 상태였고, 출근부가 철야로 도배돼 있는 것은 물론 명절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날도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앞에서 점점 예술가가 아닌 작업자로 변해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죠.

당시 근무하면서 배경에 도움이 된다는 자료는 뭐든지 사는 습관이 생겼어요. 세계여행도록 등 집이 좁아질 정도로 많은 책들을 모으며 가지 못한 곳에 대한 갈증을 풀었던 것같아요. 그렇게 풍경에 대한 감을 익히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유 감독은 바쁜 와중에도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협회 미술 분과위원장과 이사로 선출되어 업계의 다양한 안건과 개선을 위해 대외적인 활동을 펼쳐나갔다. 또한 애니메이션 배경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세계적인 행사에 전시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는 질문에는 지체 없이 김의 십자가와 더킹을 꼽았다. 1990년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김의 십자가는 참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린 순박한 조선인 형제의 아픔과 비극적 삶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배경이 된 일명 마쓰시로 대본영은 패망을 앞둔 일본이 무려 7,0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를 끌고 와 강제노역을 시킨 비극적 공간이다. 이 가운데 1,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의 십자가 같은 경우에는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강제징용의 아픔과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잊히지가 않아요.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서 5년 정도 고생하시다가 해방되면서 마지막 연락선을 타고 고향땅을 밟으셨다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과 연관돼 더욱 생각이 납니다. 한미 합작 애니메이션인 더킹은 참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나요. 아크릴물감으로 작업했는데 묻으면 지워지지가 않아서 굉장히 조심스러웠죠, 하하.”

앞으로의 계획과 따뜻한 한마디

요즘 유병노 감독은 붓과 먹을 다루는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수묵화와 산수화로 봄과 여름에 전시 회를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후배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배경 미술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작품 속 인물들이 가는 곳을 모두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 건물, 문화재, 바닷속, 은하계, 사막, 미지의 세계까지 셀 수가 없죠. 여기에 새로운 감각과 천성이 더해진다면 무궁무진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어요. 그리고 우리 시대와는 달리 요즘 미술에 대한 많은 직업들이 생겨난 만큼 이 분야에 대한 탄탄한 바탕을 쌓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선배로서 항상 응원하겠습니 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2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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