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최희승 감독의 데뷔작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는 볼 때마다 감상 포인트가 다르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처음 볼 때에는‘독립 애니메이션에 이런 개그가?’하는 생각에 조금 어리둥절하다. 두 번째 볼 때는 좀 더 대범 하게, 마음껏 웃게 된다. 세 번째에는 웃음과 함께 작품 속 메시지를 되새기며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던 고민을 돌이켜보게 된다. 이처럼 재미있는 작품을 만든 최희승 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독립 애니메이션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를 만들며 이제 첫발을 내딛은 최희승이다.

올해 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 전공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오래전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언젠가는 나도 저런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결국그 생각으로만 달려온 것 같다.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가 첫 작품이다. 작품 소개와 제작 계기가 궁금하다 한 평범한 여학생과 ‘꿈’ 이라는 이름의 남학생, 또 ‘현실’ 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학생 셋이 벌이는 이야기다. 여학생은 원래 꿈을 좋아했는데 갑자기 현실이 고백을 해오자 자신의 진짜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나는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고, 그사이 좌절을 제법 겪었다.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거나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막막해지거나 하면 집 앞 양재천을 오랫동안 걸었다. 그런 과정과 행위 자체가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의 소재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남주는 외모가 부각된 아니메 스타일의 그림체인데 여주는 드로잉 스타일의 낙서 같은 그림체다. 다르게 그린 이유는 무엇인가? 여주 캐릭터는 모두 수작업으로 그렸고, 남주 캐릭터는 100% 디지털로 작업했다. 원래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했다. 서양화를 그렸으니 드로잉을 주로 했는데, 애니메이션에 등장시켰을 때 좀 더 어우러지도록 드로잉한 것이 여주 캐릭터다. 반대로 남주 캐릭터와 배경 등 여주를 제외한 모든 것은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커머셜룩을 택했다. 그로써 친숙한 애니메이션 세계 속에서 혼자 활극을 벌이는 여자 주인공을 표현하고 싶었다. 만약 남주와 여주가 같은 그림체로 비슷하게 생겼으면 여러모로 매력이 감소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주 혼자 삐뚤빼뚤 움직이기 때문에 매력적인 게 아닐까.

작품이 매우 유머러스하다. 유머를 좋아하는가? 애니메이 션이라면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머가 있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특히 애니메이션에는 애니메이션 이라는 장르 안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유의 유머코드가 있다. 만약 이 유머코드가 실제 생활이나 실사영화 등으로 옮겨지면 무척 어색하고 민망해지는 그런 코드.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만난다면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다. 그 유머코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애니메이션이 좋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들어 갔다. 만드는 동안 내가 즐거워야 하니까. 또 한편으로 나는 작품이 관객들에게 재미있게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반드시 웃겨야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는 극의 설득력 이다. 시간을 들여 내 작품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도 있다.

유머에 요즘 유행하는 B급 정서가 녹아 있는데, 유행에 민감한 편인지? 나는 유행을 소비하는 동시에 생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행을 따라가는 면도 있으니 유행에 신경 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고민이 되는 점은 유행의 수명이다. 한 편의 단편 애니메이 션이 만들어지려면 최소 1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기획 단계에서 흥했던 유행이 작품이 완성될 시점에서는 촌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유행보다는 흐름이라는 단어가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단발적이고 다양한 유행들의 기저에 어떤 흐름이 깔려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긴 제작 기간을 고려했을 때 이 부분을 건드리는 건 항상 조심스럽다.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 속 B급 정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콘텐츠로 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병맛’ 이라는 콘텐츠를 접했던 시기는 그러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으니 소비자로서 당연히 소비했고, 그래서 생산자로 입장이 바뀐 상태에 서도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는 아니메 스타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특히 영향 받은 작품이 있다면? 예전부터 일본 아니메를 좋아했다. 특히 가이낙스의 작품을 즐겨 봤다.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는 기획 당시 가이낙스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사실 처음에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의 제작 과정을 참고해 애니메이팅 매수를 덜 사용하는 방식의 연출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훨씬 더 에니메이팅에 공을 들이게 되더라. 아무래도 첫 작품 이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연출의 호흡, 커머셜룩 부분 등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커머셜룩 스타일이 독립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 드물어서 오히려 남다르게 느껴지는데 그렇다. 커머셜룩을 모방하다 보니 작품을 선보였을 때 “이 작품은 콘텐츠 공모전에 출품하면 콘텐츠로서 수상을 노려볼 순 있겠지만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독립 애니메이션은 순수예술 장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남에게 환영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나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순수미술 분야에서 발생하곤 하는 난해한 부분들이 맞지 않아서 다시 애니메이션을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비전공자가 봐도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완성된 것이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다. 그런데 예상 외로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상도 타서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싶을 것 같다 흔히 단편 애니메이션을 한 작품 만들면 배급 수명으로 2년을 잡더라. 실제로 ‘2년 이내 제작한 작품’으로 출품 작품을 제한하는 영화제도 많다. <사랑은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는 올해 초 완성했으니 내년 말까지 영화제 등에서 상영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년을 채운 이후부터는 오픈 플랫폼에 작품을 공개하고 싶다. 오픈 플랫폼의 유저는 국적, 성별, 나이 등 많은 것이 다양한 데다 어떤 유저가 내 작품을 봤는지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내 작품을 어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았는지, 가장 좋아하는지를 통계로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궁금한 부분이다.

이미 오픈 플랫폼에 공개할 때를 위해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음악으로 배경음악을 바꿀 준비도 해놓았다. 그때가 기대된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으니 다음 계획이 궁금해진다 생각이 많다. 머릿속에는 다음 작품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닌다. 하지만 아직 구상 중일 뿐,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가 하면 해보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도 정말 많다. 이제 막 사회에 나왔으니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 참 많다.

내가 좋아했던 애니메이션들이 모두 개인이 아니라 한 회사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들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앞으로 더욱 구상을 구체적으로 하면서 하나씩 해볼 생각이다. 꿈과 현실의 외길목에서 나름의 결정을 내렸으니, 앞으로 차근차근 나아가고 싶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19.12월호
<남주영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