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집 한 채 값이 넘던 카메라

1980년대 사용하던 애니메이션 촬영용 카메라 한 대 값은 650만원. 집 한 채 값이 넘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조복동 감독은 자신이 구입한 카메라 한 대로 로보트 태권브이(이하 태권브이), 극장용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등을 촬영했다. 한 대였던 카메라를 넉 대로 늘려 카메라가 없는 제작사를 위한 촬영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도 했다. 오토 포커스가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포커스를 옮겨가며 컷을 완성하던 시절을 거쳐 1989년부터 운영했던 스튜디오 카메라는 여덟 대까지 늘어나 2000년까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을 함께 했다.

그때 당시 촬영했던 카메라 중 한 대가 지금은 김청기 감독 기념관인 ‘동심’에 전시돼 있다. 역사를 함께한 그 카메라는 조복동 감독이 처음 구입한 자신의 카메라였다. 가보로 여기는 조복동 감독만의 첫 카메라이지만 애니메이션만큼이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기념관에 전시하기로 했다고.

“1976년 태권브이를 제작할 때 사용한 소중한 카메라죠. 이후 고 임정규 감독님과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도 이 카메라로 촬영했고요.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수하고 동서동화 촬영 실장을 거쳐 1989년 나의 첫 촬영 스튜디오를 갖게 됐는데 당시 카메라 넉 대로 운영했었어요. 스튜디오 대여, 외주 촬영 등으로 카메라를 여덟대로 늘렸었죠. 그리고 또 더 시간이 지나 4천5백만 원을 호가하는 반자동 카메라가 등장하던 때가 기억이 나네요.”

집 한 채 값이 넘던 카메라

1980년대 사용하던 애니메이션 촬영용 카메라 한 대 값은 650만원. 집 한 채 값이 넘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조복동 감독은 자신이 구입한 카메라 한 대로 로보트 태권브이(이하 태권브이), 극장용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등을 촬영했다. 한 대였던 카메라를 넉 대로 늘려 카메라가 없는 제작사를 위한 촬영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도 했다. 오토 포커스가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포커스를 옮겨가며 컷을 완성하던 시절을 거쳐 1989년부터 운영했던 스튜디오 카메라는 여덟 대까지 늘어나 2000년까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을 함께 했다.

그때 당시 촬영했던 카메라 중 한 대가 지금은 김청기 감독 기념관인 ‘동심’에 전시돼 있다. 역사를 함께한 그 카메라는 조복동 감독이 처음 구입한 자신의 카메라였다. 가보로 여기는 조복동 감독만의 첫 카메라이지만 애니메이션만큼이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기념관에 전시하기로 했다고.

“1976년 태권브이를 제작할 때 사용한 소중한 카메라죠. 이후 고 임정규 감독님과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도 이 카메라로 촬영했고요.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수하고 동서동화 촬영 실장을 거쳐 1989년 나의 첫 촬영 스튜디오를 갖게 됐는데 당시 카메라 넉 대로 운영했었어요. 스튜디오 대여, 외주 촬영 등으로 카메라를 여덟대로 늘렸었죠. 그리고 또 더 시간이 지나 4천5백만 원을 호가하는 반자동 카메라가 등장하던 때가 기억이 나네요.”

연구와 시도로 만들어낸 효과들

1973년부터 독수리 오형제 TV시리즈, 가쯔야망, 플란다스의 개,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촬영해 오던 조복동 감독은 1976년 태권브이 제작에 합류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장르의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7백여 편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촬영을 담당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한국만화영화촬영기사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촬영 기법과 효과를 만들어냈었어요. 감독이 원하는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촬영감독의 몫이다 보니 늘 항상 다양한 시도와 연구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죠. 셀 밑에 셀을 덧대고 유리에 반사하는 방식으로 화려한 효과를 만들 수 있었어요. 그렇게 태권브이 등의 로봇의 변신, 레이저 쏠 때 등 화려한 효과를 만들어 액션 장면을 연출했던 거죠.”

이제는 물러나 묵묵히 박수 쳐주는 선배, 원로로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산증인인 조복동 감독은 업계와 촬영 기술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에는 SICAF 애니메이션 어워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태권브이, 태권동자 마루치 아루치 그리고 국내 최초 성인 애니메이션 블루시걸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장르를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네요. 뉴욕에서 이현세 작가의 만화책 아마게돈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때 제작위원회에 참가해 마지막 효과와 더빙을 했던 적이 있어요. 돌아오는 길에 60년 만의 폭설로 공항에서 2박 3일을 대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1991년에 일본 선라이즈사의 기동전사 건담F91을 촬영하고 미국의 TV 장편 애니메이션을 촬영했던 일 등 촬영에 미쳤던 시절이 있었죠. 이제는 후배와 업계를 위해 뒤에서 묵묵히 박수를 쳐주는 한 사람이에요. 몇 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이 탄생하길, 한국 애니메이션을 이끌어갈 후배들을 늘 응원하겠습니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19.04월호

<김민선 편집장>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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