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포착한 현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 보여주려고 해요 _ 독립영화관 53 _ 옥세영 감독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2-05-16 08: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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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사람이 사는 문(2015)

 

옥세영 감독은 상황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탐구해 그 속성을 삶에 비유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드로잉, 사진, 조형물, 영상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접목해 탄생시킨 그녀의 작품은 스크린에서 볼 수 있고 전시회에서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그녀는 조형물을 애니메이션으로, 애니메이션을 조형물로 변환시키는 실험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자신은 애니메이션 감독인가, 조형예술가인가? 경계를 구분짓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관객이나 예술 분야 전문가들이 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순 있겠다. 애니메이션이나 조형예술의 각 분야 중 규정지을 수 없는 중간의 영역에 머물면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중간자의 입장이라면 재미있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애니메이션이나 조형예술 어느 하나로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아 둘 다 하고 있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수 있겠다.

조형예술에 이어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이유는? 학창시절 그림을 잘 그려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정작 그림을 그리는 재능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범주가 넓은 비주얼아트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시야를 넓히고자 현대미술을 배우기로 했다. 그런데 공부하다 보니 일종의 매너리즘을 느꼈고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생각하다 어릴 때부터 즐겨보던 애니메이션을 떠올렸다. 여러 작품을 보고 영화제를 경험해보니 애니메이션이 스크린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고 판단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팝업리서치(2017)

  

플로팅 메모리즈(2021)


라인, 사람이 사는 문, 팝업리서치, 플로팅 메모리즈의 제작 의도를 간략히 소개해달라 

라인(2014)은 문구점에서 볼펜 테스트 용지를 보고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무심하게 그어진 선처럼 보이지만 제각기 흥미로운 형상이 군집된 생명체처럼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여닫히는 문을 보고 작품을 구상한 사람이 사는 문(2015)은 문 속에 살고 있는 존재들은 끊임없이 서로 갈구하지만 여닫히는 문에 의해 그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의도와 결과가 상충되는 모습이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외부작용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
팝업리서치(2017)는 갑티슈의 휴지를 뽑을 때 만들어지는 다양한 형상이 재미있게 느껴져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라인처럼 관찰에서 비롯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로팅 메모리즈(2021)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전통적인 도구인 셀의 특성을 극대화한 스톱모션 기법의 애니메이션으로 셀에 그려진 이미지들이 음악에 맞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어느 날 휴지를 뽑았는데 문득 내 작품이 생각나서 빤히 바라봤다는 관객도 있었고, 비록 전시장을 찾진 않았으나 도록만을 보고 팬을 자처한 분도 있었다. 작품을 처음 본 관객들은 “넌 대체 누구냐” 라며 낯설어 하는데 차츰 시간과 작품이 쌓여가니 관찰과 탐구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작가인가보다 라는 생각을 조금씩 해주시는 것 같다.
 

상영과 전시를 병행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관객에게 작품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감상하게 하려는 것이다. 특히 상영과 전시를 병행하는 시도들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상영만을 전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지는 않는다. 스크린이라는 영역과 전시라는 공간을 번갈아가며 작품을 보여주려고 한다. 움직이는 영상과 이미지를 조형물로 박제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또 연속적인 이미지를 만들 때 투입되는 내 노동량을 가늠해보자는 의도도 있었다.(웃음) 팝업리서치란 전시가 애니메이션 속 드로잉을 공간으로 끌고 나온 것이라면, 공간의 조형물을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들여보낸 것이 플로팅 메모리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영상으로 만들 때 쓰였던 그림들을 전시하거나 전시된 조형물을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품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

 

라인(2014)

 

그간의 작품을 관통하는 자신만의 시선은? 우연히 나타난 현상을 다른 각도로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찰나의 순간 또는 각각의 장면에서 보지 못하거나 지나쳤던 숨은 재미를 어떻게 표현하고 보여줄지 고민한다. 상영과 전시를 넘나들며 작품을 보여주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관객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리 보이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놓고 작업 영역을 점차 넓혀나가겠다.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가? 플로팅 메모리즈에 등장했던 말 이미지에 흥미를 느껴 기획한 것인데, 말이 달리는 모습을 순간마다 완벽하게 포착해 영화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란 사진가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트랙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카메라를 설치하고 말이 지나갈 때마다 순차적으로 촬영해 말이 취한 동작을 프레임에 담아낸 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애니메이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고 예술가이자 과학자이면서도 부인의 외도 상대를 죽인 살인자였던 그를 재조명해보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연말에 여는 개인전에서 작품을 상영하고 작업에 쓰였던 재료들도 전시할 계획이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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